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림 전쟁 (문단 편집) === 오스만 제국 === [[오스만 제국]]은 승리에 도움을 준 연합국의 요구에 따라 자국 내 기독교도들에 대한 보호 강화 및 권리증진을 약속했고 그 외에 갖가지 특혜를 주었다. 그러나 전투에서는 갖가지 추태를 보이며 더이상 그 옛날의 오스만이 아님을 재확인시켰다. 전쟁 전개 과정을 보면 초반 시노페 해전에서 오스만 해군이 러시아에게 완전히 박살난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대신 싸워준 전쟁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오스만 이후 오스만은 여러 차례의 개혁을 통해 나름대로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서구 역사학자들의 재평가에 따르면 [[오스만 제국군]]은 당대의 인식처럼 무능하지 않았다.''' [[발라클라바 전투]]의 경우는 앞서 대포가 탈취된 사건만 해도 영국군은 오스만군이 러시아군의 공세가 시작함과 동시에 붕괴했다고 비난했지만, 당대의 기록과 유물 측정이 알려주는 진실은 튀르크군은 최소한 3시간 이상 외부의 도움 없이 버텨냈고, 자만하던 영국군이 정보 부족으로 전선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음에도 늦게 합류했던 것이었다. 즉, 분전하던 오스만군이 물자 부족과 장시간의 전투로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뒤늦게 도착한 영국군이 오스만군이 고전하는 것만 보고 이들을 비난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영국군은 오스만군을 신뢰하지 못해서 세바스토폴 공방전을 제외하면 오스만군을 비전투 노동부대로만 이용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영국군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는데, 1783년까지 [[크림 칸국]]을 봉신으로 두어 크림 반도에 대한 각종 정보를 확보하고 있던 오스만군이[* 다만, 크림 반도에 대한 최신 정보는 러시아군이 앞서 있고, 크림 타타르인과 크림 반도의 주민들이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고 러시아를 지지하기도 해서 러시아군이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그래도 좀 오래 되어서 러시아보단 밀리긴 했지만 정보가 있고 그에 기반한 전술을 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던 게 오스만인데 영국은 이를 무시해버린 것.] 영국군에게 이를 갈며 "비겁하고 무능한 우리는 후방에서 일이나 할 테니 잘난 네놈들이나 알아서 싸워봐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영국군에게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 후대 영국 역사학자들은 영국군의 큰 피해는 같은 연합군이었던 오스만 제국군을 무시하고 무모한 전술을 구사한 자업자득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생각보다 잘 싸우고 활약했으나, 연합군은 이들이 밀리는 것만 보고 무시했다가 자기들 피해만 더 키웠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다가 영국은 육군 관련해서 [[매관매직]]이 보편적이었던 것도 문제였다. 분명 그 당시로서는 여러모로 장점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군대의 질적 문제에 큰 악영향을 끼쳤고 여기서 그 대가를 치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위의 얘기는 당시 서구인들이 가졌던 문화적 편견에 대한 반론일 뿐이지 '''오스만 제국이 건재하고 군사력이 쓸 만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악조건을 버티는 오스만 제국 병사의 역량과 국가와 군대의 역량은 엄연하게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환자였고 스스로의 힘으로 러시아를 막을 힘이 없었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이집트 속주를 다스리던 무하마드 알리가 독립하겠다고 오스만 제국 황제 [[마흐무트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내부위기조차 스스로 어쩌지 못해 러시아와 서방의 도움으로 넘어가는 판국이었다. 이 위기도 이집트를 후원한 뒤 삼키려는 프랑스와 그걸 저지하기 위한 영국의 파워게임으로서 오스만이 그야말로 서양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버렸음을 뜻한다. 게다가 개혁을 하긴 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인 데다가 지방에는 여전히 비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해서 다민족간 결속력이 거의 제로였기 때문에, 강대국이 마음만 먹으면 종교나 인종 문제로 광범위한 반란을 선동해서 전쟁 수행 능력을 손쉽게 깎아먹을 수도 있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 정부는 수입의 일부를 수입 관세에 의존했는데, 이것도 영국이 자유무역이 최고라면서 관세를 내리도록 부추긴 바람에 타격을 받았다. 정부에 돈이 없으면 상비군 유지에도 타격이 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할 일이었고, 따라서 크림 전쟁만 해도 시노프 해전에서는 러시아의 압승이었고, 육전에서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최후 통첩 등으로 후방이 불안해진 러시아가 전력을 투입하지 않았음에도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상륙 전까지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압도하고 있었다. 서방국가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가 무난하게 승리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실제로 20여년 뒤 일어난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는 러시아에 참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